유창함 속 공허함
피칭를 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원하던게 이게 맞나?" 라는 의심을 했다. 말은 유창하고 발표 자료도 화려한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공허했다. 그럴싸 해보이는 수상 실적만 많았을 뿐, 사실은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수상 실적이 사업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전문가와 관계자만 찾아 다녔을 뿐, 고객 인터뷰 또한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적어도 100명은 만나봐야 했다.
발로 뛰는 것이 힘들어서도 있지만, 사실은 두려워서가 크다. 혹시 우리의 가설이 틀린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불필요한 삽질이 아닐까 하는 걱정.
그래서인지 IR피칭 자료를 만들면서도, 심플한 팩트가 아니라 꾸밈 많은 표현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수식어, 지어낸 통계 자료 수치, 장황한 기술 설명, 검증하지 못한 수많은 가설들까지… 최대한 심플하고, 담백하게, 팩트만 말해야 했다. (사실 이게 젤 어렵다)
원래 progress를 만들지 못한 pitch deck엔 꾸밈이 많은 법이다. 확신이 없을 뿐더러, 숨기고 싶은게 많기 때문이다.
우리조차 확실하지 않은 가설을 가지고 지원하게 되면 당연히 발표도, 질의응답도 자신이 없다. 나조차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까?
YC 플레이북에 이런 말이 있다. "스타트업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집요하게 찾아내고 빠르게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파는 것이다"
솔직히 창업가들 중에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가슴에 손을 얹고 질문해보자. 아마 없을 것이다.
고객한테 보여줬을 때 반응이 어때? 그래서 성과는? 왜 그 솔루션이야? 이렇게 본질을 묻는 질문에 빙빙 둘러 답변한다면, 그것은 red fla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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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 창업동아리에서 친구랑 여행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삽질하던 때가 있었다. 우연히 디스콰이엇을 알게 되었는데 도대체 이런 프로덕트는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도언님께 디스콰이엇은 어떻게 성장했는지, 처음의 모습은 어땠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도언님의 답변은 꽤 충격적이었다. 거의 죽은 서비스와 다름 없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팀원 모두가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여 매일 포스트를 올리고, 고객 한 명을 실제 사람 한 명을 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YC의 "Do things that don't scale" 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님께서는 "돈이 없어도, 제품이 없어도, 준비가 안되어있더라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해결하겠다고 했던 그걸,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작더라도 직접 고객에게 해결하는 일을 거듭하고 있는 창업자의 이야기 속에는 스토리가 있다.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다." 라고 말씀하셨다.
고객을 일회성 설문조사 대상으로 취급하는 순간, 그저 우리를 성공하게 해줄 수단으로 보는 순간,
고객은 이를 빠르게 눈치채고 떠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