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e을 만들며
흑백 요리사를 보면, 이미 충분히 잘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위험한 선택을 하는 셰프들이 있다. 탈락하면 그대로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탈락한다.
같은 요리를 9번 발전시키는 최현석 셰프도, 첫 번째 생존 미션에서 모두가 안전한 요리를 할 때 혼자 토끼 고기를 선보인 삐딱한 천재 셰프도 그렇다. 이렇게 자신을 편안함 밖으로 내던지는 모험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남다르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들에겐 실력은 기본이고, 스토리가 있다. 꽤나 섹시하다.
이렇게 불편한 도전을 계속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공과 실패를 모두 응원하게 된다. 아마도 그들은 몸이 편안해질 때 쯤 새로운 도전을 찾아다닐 것이다.
한국에도 창업 문화를 만들고 EO를 글로벌 미디어로 만들기 위해 미친듯이 외화를 벌어들이겠다고 믿고 외치는 EO의 태용 대표님을 봐도 비슷하다. 실패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일들을 기적처럼 계속해서 해내고 있다.그럼 도대체 무엇이 그가 그러한 사명감을 갖게 만들었을까?
나는 1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했다. 커피챗을 통해 내가 리스펙하는 사람들이 걸어온 스토리에서 진한 깨달음을 얻곤 했다. 역시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한다. 그들이 걸어온 길 하나하나에,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가 있었다.
내가 사람 냄새 나는 스토리텔링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느새부턴가 SNS에 AI가 생성한 글과 사진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사람이 쓴 글이 더 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건 완벽하게 구조화된 글보다, 어설프더라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사람은 타인을 돕는 것이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라고 한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타인을 돕는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꼭 살아야 할 Why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다.
내가 삶의 의미를 찾았을 때는 모두 창업을 했을 때이다.
AI 보청기라는 제품을 만들 때 청각장애인과 복지관 관계자 분들을 여럿 만나고 난 후 느낀 감정은,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야겠다’ 보다 ‘이건 나에게 주어진 의무다. 꼭 해내야만 한다’ 라는 식의 사명감이었다.
내 개인적인 성공보다, 누군가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도우려고 할 때 내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윌리엄 맥어스킬의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내가 혼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는 좋은 창업가들을 찾아서 도와주고 연결해주는 일이 더 효율적인 이타주의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가 사는 인천에도 좋은 창업가들이 많이 있다고 믿는다. 좋은 창업가를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고, 그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싶다.
적어도 나에겐 그럴 의무가 있다.
창업가들이 미친듯이 큰 꿈을 꾸게 하고 그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게 해주고, 때론 넘어져도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싶다. 더 나아가 한국의 창업가들이 글로벌에서도 잘할 수 있는 ‘창업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 이게 내가 찾은 삶의 의미다.
큰 꿈에 비해 현실이 조잡해 보여도 괜찮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다. 하지만 2달 전에 이 일을 시작한 이유만큼은 절대 의심하지 않으려 한다.